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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미술 1호: 글 따라 미술
열 살 때 원의 개념을 배웠다. 주어진 길이의 지름을 가진 원을 정확히 그려내야 하는 시험을 봤다. 원의 중심에 바늘을 신중히 찍었는데도 자꾸 구멍이 났다. 컴퍼스라는 무기로 난도질한 시험지를 들고서 귀가하던 길. 현관문 앞에서 머뭇대던 날이 기억난다. 부모님 사인을 받아야 하는데. 내가 들고 있는 건 시험지가 아니라 폐휴지에 가까웠으니까.
새하얀 벽 위에 걸린 작품을 본다. 도통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붓 자국들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별자리처럼 흩어진 점과 선을 모아 형상을 만들어보려고 애써본다. 중심을 찍고 원을 그려내듯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지름도, 그렇다 할 중심점도 정해지지 않은 시험지에 남게 될 것은
단지 구멍이다. 관람선 뒤에서 머뭇거리지 않을 수 있다면.